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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풍성함과 지혜와 지식의 깊이(33)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사, 오! 하나님의 풍성함과 지혜와 지식의 깊음이여
“오!”
강한 감정을 나타내며, 본문 전체의 경외감을 강조한다(BDF, Longenecker, EGGNT).
대부분의 신학 사전들(BDAG, TDNT, NIDNTTE, LN, EDNT)은 감탄사로, 이는 주로 경외감, 놀라움, 기쁨 또는 슬픔과 같은 강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깊이에 대해 바울이 느끼는 경외와 감탄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무관사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를 나타낸다(Robertson, EGGNT). 이는 하나님의 독특성과 절대성을 강조한다.
“풍성함과 지혜와 지식”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낸다.
뒤따르는 무관사 명사들은 추상적이고, 질적이며, 확정적이다(EGGNT).
세 개의 추상 명사의 소유격은 내용을 설명하며, 그것들이 의존하는 주격 깊음(βάθος)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진다(Wallace, EGGNT). 이는 하나님의 풍성함, 지혜,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낸다.
“풍성함”
대부분의 신학 사전들(BDAG, TDNT, NIDNTTE, LN, EDNT)은 물질적인 부에서 확장된 개념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자비, 그리고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으로 해석하며, 여기서는 특히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무한한 자원을 나타내는 비유적 의미로 이해된다.
하나님의 자비[Ho, ICC2], 친절[ICC2, NICNT], 선함[Ho], 그리고 은혜[ICC1, TH]의 풍성함이다(AES).
“지혜”
이해하고 그에 따라 기능하는 능력으로,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조치로써의 하나님의 초월적인 지혜(BDAG)
대부분의 신학 사전들(BDAG, TDNT, NIDNTTE, LN, EDNT)은 인간의 지혜와는 구별되는,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지혜로, 여기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깊이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통찰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주로 9-11장에 설명된 대로 그의 구원 계획에 초점을 맞춘다(BECNT).
“지식”
대부분의 신학 사전들(BDAG, TDNT, NIDNTTE, LN, EDNT)은 하나님의 무한하고 초월적인 지식으로 해석하며, 이는 인간의 제한된 지식과는 대조되는 개념으로 여기서는 하나님의 깊고 불가해한 지식을 의미한다.
주로 그분의 구원 계획에 초점을 맞추는데,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그분의 미리 아심의 사실뿐만 아니라, 그분이 그것을 정하신다는 사실(BECNT)
“깊이” – βάθος(바도스, 깊음), 명사, 중성, 단수, 주격
독립적 주격(Porter, EGGNT)
범위의 극단적인 지점을 나타낸다(LN).
심오함과 광대함을 나타낸다(ICC-Cranfield, EGGNT).
대부분의 신학 사전들(BDAG, TDNT, NIDNTTE, LN, EDNT)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측량할 수 없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깊이를 나타내는 은유적 의미로 해석하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본성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풍성함과 지혜, 지식의 깊이를 찬양하며, 이는 하나님의 속성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신비로운 계획을 인정하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사, 그분의 판단들은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가
“그분의” – 인칭 대명사, 3인칭, 남성, 단수, 속격
주격적 소유격으로, 판단이 하나님 자신에게 속해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의 판단이 독립적이고 절대적임을 강조한다.
“판단” – κρίμα(크리마, 심판, 유죄선고), 명사, 중성, 복수, 주격, 판단들
“심의 과정의 내용”으로, 판결(선고), 판단(BDAG)
“판단 과정의 내용”으로, 심판(판단), 결정(LN)
하나님의 사법적 판결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그가 집행하는 모든 결정도 포함한다(BECNT).
대부분의 신학 사전들(BDAG, TDNT, NIDNTTE, LN, EDNT)은 하나님의 심판이나 판단으로 해석하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결정이 얼마나 심오하고 불가해한지를 나타낸다.
“얼마나” – ὡς(호스)
감탄사 “얼마나(ὡς)”는 뒤따르는 형용사(헤아릴 수 없는)를 강조한다(EGGNT). 이는 하나님의 판단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함을 나타낸다(Robertson)
“헤아릴 수 없는” – ἀνεξεραύνητος(아넼세라우네토스, 헤아릴 수 없는, 찾을 수 없는), 형용사, 중성, 복수, 주격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헤아릴 수 없는”(BDAG)
하나님의 판단이 인간의 탐구를 넘어선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신학 사전들(BDAG, TDNT, NIDNTTE, LN, EDNT)은 인간이 이해하거나 탐구할 수 없는 하나님의 판단, 길, 혹은 계획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고, 하나님의 초월성과 신비로움을 나타낸다.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사, 그리고 그분의 길들은 얼마나 측량할 수 없는가!
“길들” – 명사, 여성, 복수, 주격
길, 경로, 방법이나 방식(BDAG)으로, 여기서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판단 방법과 하나님의 계획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취하시는 길들을 말한다(Cranfield, EGGNT).
그것은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이며, 여기에는 구원하시는 행동과 심판하시는 행동이 모두 포함된다(BECNT).
“찾지 못할 것이로다” – ἀνεξιχνίαστος(아넼싴니아토스, 파악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형용사, 여성, 복수, 주격
문자적으로는, “추적할 수 없는”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길에 대해서, “측량할 수 없는(파악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을 의미한다(BDAG).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욥기서에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묘사한다.
욥 5:9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욥 9: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이 단어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나 완전히 탐구하거나 추적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판단들과 길들”은 동의어 병행법으로, “하나님의 판단들과 길들은 인간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일과 길에 복종할 때에만 올바르게 분별될 수 있다”는 진리를 가리킨다(Cranfield, Barth, EGG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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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절대 주권(34-35)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왜냐하면(γάρ)”
논리적 설명을 위한 설명 접속사로, 문장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고, 하나님의 길은 찾을 수 없다(33)”는 이유를 세가지 질문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유는 아무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그에게 조언을 줄 수 없으며, 그를 빚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34, 35절)(Jewett, EGGNT).
34, 35절의 세가지 질문은 “명백히 수사학적이며, ‘아무도 없다’는 대답을 기대하게 한다(Moo, EGGNT).
사 40: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주의”
이 찬송가 전체의 주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이시다(BECNT, WBC).
“알다”
이 첫 번째 질문은 33절의 “지식”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EGGNT).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사, 또한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되었느냐?
“또는”
질문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 이 분리 접속사는 묘사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불가능성을 강화한다(Jewett, EGGNT).
“모사” – σύμβουλος(쉼불로스, 고문, 상담자, 조언자)
조언자, 상담자(BDAG)
본 절에 대해, 무는 하나님의 지혜의 불가해성과 인간이 그분의 계획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강조한다(NICNT).
크랜필드는 이사야의 구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초월성과 인간의 시도들이 신성한 판단을 이해하는 데 있어 무익함을 강조한다(ICC).
두번째 질문은 33절의 “지혜”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EGGNT).
하나님께 조언할 자가 아무도 없음을 강조한다.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사, 누가 그분에게 먼저 드려, 그분에게 갚으심을 받겠느냐?
“주께” – 여격
사, 그분에게
이익을 나타내는 여격(EGGNT)
“먼저 드려” – προδίδωμι(프로디도미, 먼저 드리다), 직설법, 과거, 능동태, 3인칭, 단수
미리 드리다(BDAG).
“갚으심을 받다” – ἀνταποδοθήσεται(안타포도데세타이, 갚다, 보답하다, 되돌려주다), 직설법, 미래, 수동태, 3인칭, 단수
“의무에 대해 상호주의를 실천하다”는 의미로, 갚다, 보답하다(BDAG).
하나님께 갚으심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33절의 “하나님의 풍성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Harvey, EGGNT).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풍성하여 부족함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누군가가 한 어떤 일에 근거하지 않는다(AB, NICNT).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제공한 섬김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ICC).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공로와 전혀 무관하다(BEC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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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영광(36)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 구절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강력한 송영이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사, 왜냐하면 만물이 그분으로부터(나오고)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존재하고) 그리고 그분께로(돌아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34, 35절의 근거를 나타낸다(BECNT).
“만물이”
모든 것의 합을 말한다(BDF, EGGNT).
“그분으로부터”
출처를 나타낸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근원(BECNT, NAC, NICNT, TNTC, WBC)이시며, 창조자(AB, ICC2, SSA, TH) 이심을 나타낸다. 이는 창조의 근원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분을 통하여”
매개를 나타낸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유지자(AB, ICC2, NAC, NICNT)와 통치자(Gdt, ICC2)와 존재의 매개자(WBC)이심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유지와 섭리를 강조한다.
“그분께로”
목표를 나타낸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궁극적인 목표와 목적이 하나님임(AB, BECNT, HNTC, ICC, NAC, NICNT, WBC)을 강조한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우주의 모든 것에 대한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존재임을 선언하며, 찬양한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사, 그분에게 영광이 영원히(있기를)! 아멘
“그분에게”
하나님을 간접 목적어로 하여 영광이 그분께 돌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영광” – δόξα(독사, 영광)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영광(EGGNT)으로, 하나님의 위대함과 주권을 인정하는 표현이다.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지속될 것임을 강조한다.
“있을지어다” – 있기를
생략된 것으로 이해된다(EGGNT).
“아멘”
확언과 동의를 나타내며, 송영의 끝을 맺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이는 그가 9-11장(Gdt, ICC2, Mor, Mu, NICNT), 특히 11:32(BECNT)에서 논의해 온 것을 마무리한다(AES).
로마서 9-11장에서 하나님의 지혜, 지식, 주권은 탐구할 수 없고 찬양 받아 마땅함을 반영한다(NICNT).
창조와 구속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의 중심성을 요약한 것이다. 바울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그분의 능력으로 존재하며, 궁극적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고 강조한다(BECNT).
바울의 송영이 하나님의 계획의 위엄과 신비를 재확인하는 역할을 한다(ICC).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송영이다. 이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상기시키고, 그분의 영원한 통치를 인정하는 중요한 신앙 고백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이에 대한 인류의 올바른 반응으로서의 경배와 경외를 선언하며, 모든 창조와 역사가 하나님의 지배와 목적 아래 있으며, 궁극적으로 그분의 영광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를 강력하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