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믿지 못하는 원인
마 22:23-33
서론:
- 나름대로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사두개인들이…예수께 와서”
사, 사두개인들이 그분에게 왔다
(사두개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부활이 없다 하는”
사, 부활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사두개인들이)
“하는” – λέγω(말하다, 이야기 하다), 부, 현, 능, 남, 복, 주, 계속적인 의미, 말하고 있는
직접적인 강화와 함께, 가르침으로 선포하다(BDAG)
사두개인들은 배타적으로 모세오경 만을 교리로 삼았기 때문에, 모세오경에 부활 교리가 없다 하여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성경에서는 부활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단 12: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많은” – רַב(큰, 많은), 형, 남, 복, 절
포괄적인 의미로, 모두 – 이스라엘에 속한 만큼 얼마든지(모두)(HALOT)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사두개인들이 언제 찾아왔습니까?)
“그 날” –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그 날에)
바로 앞의 사건, 곧 바리새인들이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찾아왔다가 주님의 지혜의 말로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돌아간, 그 같은 날을 말한다.
“물어 이르되”
사, 그리고 그들이 그분께 물었다 이르되
(뭘 물었습니까?)
24절부터 28절까지 내용을 말하면서 물었다.
여기서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모세가 일렀으되”
사두개인들은 최고의 권위자를 내세워, 계대법(형사취수제)을 말함으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 25: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사실성이 희박한 가상의 경우를 지어낸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런 이유를 대면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까지 이런 불행이 이어지는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는 세상 나라에 있는 불행, 슬픔, 고통, 죽음 등이 없다. 그 나라에는 오직 행복과 즐거움과 의로움 만이 있을 뿐이다(황원하).
-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함으로 속고 있기 때문에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오해하였도다” – πλανάω(속이다, 오도하다, 기만하다, 길을 잃게 하다), 직, 현, 수, 2, 복, 너희가 속고 있다(오도되고 있다)
‘적절한 방향 감각 없이 진행하다’는 의미로, 길을 잃다, 오도하다, 목적 없이 방황하다. 여기서의 의미는, 잘못 판단하다(BDAG)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된 견해를 갖게 하여 오해하게 하다’는 의미로, 오도하다, 속이다, 잘못 생각하게 하다(LN)
(왜 속고 있습니까?)
“알지 못하는 고로” – μὴ εἰδότες(알지 못해왔기 때문에), 분, 완, 능, 남, 복, 주, 과거부터 지금까지 알지 못해왔다는 의미
οἶδα – 알다, 깨닫다
(무엇을 알지 못해왔습니까?)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성경” – γραφή(성경), 여, 복, 대, 성경들
복수형은 성경의 모든 부분을 집합적으로 나타내는, 그것의 전체로써 성경(BDAG)
“능력” – δύναμις(힘, 권능, 능력), 여, 단, 대
어떤 식으로든 기능(역할)할 잠재력(BDAG)
(누구에게 속고 있습니까?)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마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속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 γὰρ
원문에는 이 접속사가 문장 앞에 나와서, 29절에서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속은 이유를 나타낸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사, ~같기 때문이다
‘천사들과 같다’는 말씀은 천사들과 같이 영원히 죽지 않으며, 결혼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이다(옥스포드).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에도 이 세상의 삶과 같을 것이라는 사두개인들의 가정이 잘 못되었음을 지적하고 계신다.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죽음이 없는 새로운 삶에는 출산이 필요치 않으며 따라서 생식 기능을 위한 이 땅의 배타적인 관계는 적용되지 않는다(TNTC)
- 살아 있는 자들의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개역개정판은 31절과 32절이 함께 섞여 있다.
“읽어보지 못하였느냐(32)”
사, 그리고 너희가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뭘 읽어보지 못하였느냐고 물으십니까?)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31)”
사,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너희에게 말씀하여 진 것을
“이르시되”
31절 맨 끝에 나온다.
(그러면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32)”
“나는” – ἐγώ εἰμι
‘나는’이 강조됨, 내가 참으로(LN)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31)”
사, 그분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들의 하나님이시니라
“죽은 자” – νεκρός(죽은), 형용사의 명사적 용법, 죽은 자들의
더 이상 육체적으로 살아있지 않은 사람, 곧 죽은 사람, 시체
“살아 있는 자” – ζάω(살다), 분, 현, 능, 살아 있는 자들
‘죽은 자들’은 형용사를 사용했지만, ‘살아 있는 자들’은 현재 분사를 사용하므로 현재 계속해서 살아 있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육체적으로 죽었을지라도 그 안에 부활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계속 살아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목적이 인간과 교제하시기 위함인데 인간이 하나님을 믿고 죽음으로 끝난다면 창조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죽은 자와 교제하시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요 11:25,26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놀라더라” – ἐκπλήσσω(깜짝 놀라다), 직, 미완, 수, 3, 복, 능동태의 의미로 쓰임, 그들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압도될 정도로 놀라움으로 가득 차게 하다’는 의미로, 깜짝 놀라게 하다(BDAG)
거의 압도될 정도로 놀라워하다(LN)
예수님의 가르침에 이렇게 깜짝 놀란 것을 보면 그동안 이런 가르침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