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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
눅 24:13-35; 막 16:12-13
서론:
-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 엠마오로 간다는 말의 의미
멀어지고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첫째, 지리적으로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그리고 보라” – 원문에는 문장 제일 앞에 ‘그리고 보라’가 나온다. 장면을 전환함으로 이 사건에 집중시키고 있다.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26번, 사도행전에서 8번 사용했다(BECNT).
“그 날에” – ἐν αὐτῇ τῇ ἡμέρᾳ(그 같은 날에, 바로 그 날에)
그 주의 첫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자매들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던 날
“그들 중 둘이”
자매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었던 제자들 중 둘
11사도는 아니고 더 넓은 제자 그룹에 속한 제자들이다.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24: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십오 리” - 60스타디온, 11.52Km
“엠마오라 하는 마을”
엠마오 마을의 위치는 현재 알려지지 않았다(BECNT, TNTC).
엠마오가 이 두 제자의 집인지, 숙박을 위해 들린 곳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가면서” – ἦσαν πορευόμενοι(가고 있었다), 직, 미완, 능; 분, 현, 디
예루살렘은 성전 중심 곧 하나님 중심이요, 예배 중심지를 의미한다.
오늘 날 우리에게는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관계적으로
그리스도 공동체, 신앙 공동체, 교회 공동체,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
셋째, 신앙적으로
예수님의 부활 신앙
-
- 엠마오로 가는 이유
첫째, 그들이 바라던 기대가 사라졌기 때문에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예수님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셨지만,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제자들이 알아야 할 것을 설명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질문하셨다(NTC)
“슬픈 빛을 띠고” – σκυθρωπός(슬픈, 우울한, 시무룩한), 형, 남, 복, 주, 서술적 용법
우울함이나 슬픔을 암시하는 표정을 짓는 것(BDAG)
슬프고 낙담하는 것(LN)
그들은 그들이 토의하고 있었던 사건에 대해 슬퍼했다(BNTC, NTC, TNTC, WBC)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글로바” – Κλεοπᾶς(클레오파스), Κλεόπατρος(클레오파트로스)의 헬라식 축약형 이름으로, 요 19:25에 나오는 글로바(클로파스)가 아니다. 클로파스는 히브리/아람어 이름이다(NAC).
다른 곳에는 언급되지 않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한 제자의 이름(EDNT)
글로바와 함께 있던 다른 제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추측이 있어왔다. 아마 글로바의 아내나 아들이었을 것이다(NIGTC)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나사렛 예수”
당시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많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누군가를 나타내기 위해 나사렛 예수라고 지목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20절의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서 계신다(ESVSB).
“말과 일에 능하신”
사, 행위와 말씀에 능력이 있으신
“일” – ἔργον(행위, 행실, 일), 중, 단, 여
어떤 종류의 활동에서 그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말씀과 대조적인(BDAG), 곧 행위(행동)를 의미한다.
그 행위는 기적과 치유였고, 그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설교였다(UBS Handbook).
“능하신” – δυνατός(능력이 있는, 힘있는), 형, 남, 단, 주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LN)
“선지자” – προφήτης(선지자, 예언자)
신의 뜻이나 목적을 선포하거나 드러내기 위하여 영감을 받은 사람(BDAG)
초자연적인 존재의 뜻을 대변하거나 해석하는 사람(BSL)
하나님을 대신하여 영감 받은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LN)
원문에는 ‘선지자’ 바로 앞에 ‘남자’라는 단어가 나온다.
예수님은 선지자적 남자였고, 아마 남자란 단어는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다(ICC).
예수님을 선지자라 한 것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제자로서 적절한 호칭은 아니다.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 민감한 주제였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의 완전한 정체성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소개하는 방법에 주의하고 있다(BECNT).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유다가 예수님을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에게 넘겨주므로 했던 짓을, 그들도 결국 그를 빌라도에게 넘겨줌으로 했다(ESVSB).
“관리들이” – ἄρχων(통치자, 지도자, 관원)
행정상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 곧 산헤드린 회원들(BDAG)
사법적 결정을 하는 통치자들(BSL)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십자가에 못 박힘의 육체적 행위는 로마인들에 의해서 였지만, 누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힘의 인간의 책임을 우선 종교지도부에 두고 있다(ESVSB).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예수님에 대한 백성들의 관점은 종교지도부의 것과 대조적이다.
“속량하다” – λυτρόω(속량하다, 해방시키다), 부, 현, 중
억압적인 상황에서 해방시키는 것(BDAG)
노예를 해방시키는 과정에 대한 암시적인 유추와 함께 풀어주거나 석방하는 것(LN)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실 분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다.
“바랐노라” – ἐλπίζω(기대하다, 소망하다), 직, 미완, 능, 1, 복, 우리는 계속해서 기대하고 있었다
신앙생활의 잘못된 동기에서 출발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21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사흘째요” – τρίτην ταύτην ἡμέραν ἄγει
사, 오늘이 삼 일을 보내고 있다.
“보내고 있다” – (보내다, 쓰다, 소비하다), 직, 현, 능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새벽에” – ὀρθρινός(이른 아침에, early in the morning), 형, 여, 복, 주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함이라” – λέγω(말하다, 이야기 하다), 분, 현, 능, 여, 복, 주, 계속해서 말했다는 의미이다.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두어 사람”
베드로와 요한
요 20: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이 두 제자들의 불신앙에 대한 강한 유감과 안타까움을 나타내신 말씀이다.
눅 18: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미련하고” – ἀνόητος(어리석은, 무지한), 호, 남, 복, 오! 어리석은 자들이여!
이해하기 위하여 자신의 정신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LN)
그는 죽으셔야 하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실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불렀다(LTW)
오! 어리석은 자들이여!가 오! 어리석은 남자들이여!보다 더 정확한 번역이다.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은 두 남자인지 남자와 여자인지(아마 남편과 아내)를 명시하지 않는다(ESVSB)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바로 그 사실들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메시아이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WPNT)
“할 것이” – δεῖ(반드시 ~해야 하다), 직, 미완, 능
이것은 예언에 근거했고(BECNT, Lns, TNTC), 그 예언들은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고 계획이었다(Lns).
영광은 자신의 고난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자신의 승귀를 묘사한다(WBC)
-
-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함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힘과 빈 무덤과 천사들이 말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 자매들의 이야기 등(19절 ~ 24절까지의 내용)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문의할” – συζητέω(논쟁하다, 논의하다, 토론하다), 부, 현, 능
토론을 계속하는 것(BDAG)
무언가에 대해 다른 사람과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BSL)
이 단어는 감정적 대화를 시사한다(BECNT).
“예수께서” – αὐτὸς Ἰησοῦς(예수님 자신이, 바로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친히)
이것은 그들이 논의한 바로 그 주제가 그들과 함께한 분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ICC).
“동행하시나” – (함께 가다, 동행하다), 직, 미완, 디, 3, 단, 그가 동행하고 계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집으로 돌아가는 예루살렘 순례자로 생각했을 것이다(AB, BECNT).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사, 그러나 그들의 눈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계속 붙잡혀 있었다.
“가리어져서” – (막다, 방해하다, 붙잡다, 억제하다, 저지하다), 직, 미완, 수, 3, 복, 그것들이 계속 막혀 있었다, 방해 받고 있었다, 붙잡혀 있었다, 저지 당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런 식으로 통제하는 것(BDAG)
어떤 권위나 힘을 기반으로 어떤 상태가 계속되도록 하는 것(LN)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의해 그들의 눈이 가리여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들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두 제자는 슬픔(17 슬픈 빛을 띠고), 원망(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 좌절감(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 바랐노라), 불신앙(25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에 그들의 눈이 사로잡혔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은 영적인 맹인이었다.
- 회복
- 교제의 떡을 뗄 때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예수님께서 복음 메시지의 사자에게 환대를 실천할 기회를 두 제자에게 주셨다(NAC).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강권하여” – παραβιάζομαι(강하게 강요하다), 직, 과, 디
본 절에서는 정중한 말로 강권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WPNT).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음식 잡수실 때에” – κατακλίνω(식탁에 기대다), 부, 과, 수, 식탁에 기대셨을 때
먹기 위하여 옆으로 눕는 자세로 쿠션 등에 기대거나 휴식하는 것(BSL)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예수님은 손님 대신 주인 역할을 맡으셨는데 아마 그것은 예수님이 가장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거나 그들에게 성경을 설명해주었던 분에 대한 그들의 존경을 나타냈을 것이다(BECNT).
“축사하시고” – εὐλογέω(축복하다, 찬양하다), 직, 과, 능, 3, 단
칭찬할 만한 말을 하는 것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BDAG)
신적 호의, 은총을 불러오거나 일으키는 것(BSL)
언어적 행위 자체가 중요한 이익이 된다는 함축성과 함께 하나님께 신의 은총을 주시도록 요청하는 것(LN)
최후의 만찬 때(눅 22:19), 오병이어 때(눅 9:16)
예수님은 부활 후에 여러 번 먹는 것과 관련하여 나타나셨다(눅 24:41-43; 요 21:9-15; 행 10:41)
“주시니” – (주다), 직, 미완, 능, 3, 단, 동작의 개시를 나타내는 미완료, 그가 주시기 시작하셨다.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의 눈이 밝아져” – αὐτῶν δὲ διηνοίχθησαν οἱ ὀφθαλμοὶ(그리고 그들의 눈들이 열렸다)
‘그들의 눈들이 열렸다’는 수동태로 주님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셨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눈들이 열렸다’는 단어는 32절에서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에서 ‘풀어 주시다’와 같은 단어이다.
“그인 줄 알아 보더니” – καὶ ἐπέγνωσαν αὐτόν(그리고 그들이 그를 알아 보았다)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 καὶ αὐτὸς ἄφαντος ἐγένετο ἀπʼ αὐτῶν (그리고 그는 그들로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인 목장 안에서 주의 만찬과 애찬의 떡을 뗄 때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일들이 일어난다.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15절에서 갑자기 두 제자와 동행하신 것과 반대 현상으로 부할 하신 후에 달라진 모습이다(눅 24:36; 요 20:19,26)
-
- 말씀을 들을 때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
율법서와 선지서
“모든 성경”
율법서와 선지서가 앞에 나왔기 때문에 성문서로 볼 수 있다.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설명하시니라” – (설명하다, 해석하다), 직, 과, 능, 3, 단
이해할 수 있도록 어떤 것을 명확히 하는 것(BDAG)
특히 모호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것의 의미를 보다 광범위하고 공식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LN)
예수님은 메시아에 대한 명백한 예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역사적 패턴들이 구약 전체에 거쳐 되풀이해서 얼마나 예수님 자신을 고대하였었는지를 그들에게 설명하셨다(ESVSB).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풀어 주실” – διανοίγω(열다, 설명하다, 해설하다), 직, 미완, 능, 3, 단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사,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계속해서 불타고 있지 않았느냐?
낯선 분의 성경해석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시키기 시작했다(NAC).
“뜨겁지” – καίω(불타다, 태우다, 불사르다), 분, 현, 수, 계속해서 불타고 있는
감정적인 경험(BDAG)
- 증인이 됨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곧 그 때로” - αὐτῇ τῇ ὥρᾳ
사, 그 같은 시간에, 혹은 바로 그 시간에
“그들과 함께한 자들”
눅 24: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고전 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두 제자의 보고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것을 더욱 확인시켜 주었다(NICNT).
“말하더라” – ἐξηγέομαι(설명하다, 묘사하다, 알리다), 직, 미완, 디, 3, 복, 그들이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직접 사람들에게 부활을 확인시키실 때만이 받아들여질 만큼 부활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한 신비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부활을 의심하던 이들이 후에 부활의 증인으로 순교까지 하였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부활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한다(옥스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