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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2021-02-21
본문 요 20:11-18; 막 16:9-11; 마 28:9-15
설교제목 부활의 또 다른 증거,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 주심

C0088 from 광주중앙침례교회 on Vimeo.

부활의 또 다른 증거,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 주심

20:11-18; 16:9-11; 28:9-15

서론:

  1. 막달라 마리아에게

막 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안식 후 첫날” – 그 주의 첫날에(on the first day of the week)

거의 모든 영어 성경들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 주의 첫날인 일요일 곧 주일 이른 아침에 살아나셨다. 그래서 우리가 토요일 안식일이 아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 주일을 기념하여 모이게 되었다.

“이른 아침”

일광 시기의 이른 부분(BDAG, LN)

새벽 지나서 아침의 이른 시간(BSL)

“먼저 보이시니”

사, 처음(첫 번째) 나타나셨다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따르며 섬겼고, 십자가의 길을 동행했고, 십자가 위에서 6시간을 지켜보았고,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무덤에 안장하는 것을 다 지켜보았다. 그리고 향품을 준비해서 새벽에 무덤에 왔다가 다른 사람들은 다 내려간 다음에도 무덤에 머물렀다. 그러므로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뵙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받은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귀신” – δαιμόνιον(귀신, 악령), 중, 복, 대

악한 초자연적인 존재나 영(LN)

하나님을 반역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편이라면 누구나 적대시하는 초자연적인 피조물(BSL)

인간과 신 사이의 지위를 갖는 적대적인 초자연적인 존재(BDAG)

“쫓아내어 주신” – κβάλλω(쫓아내다, 몰아내다), 직, 과완, 능

귀신이 어떤 사람을 더 이상 소유하거나 조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LN)

(이제 아래 성경에서 그녀가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뵙게 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

요 20:11-17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처음 그 주의 첫날에 무덤에 올라온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세 사람이었다.

막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그녀들은 천사들이 일러준 대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 올라올 때 막달라 마리아도 함께 뒤따라 온 것으로 보인다.

원문에는 이 문장이 그러나(δ)로 시작한다.

‘10 이에 두 제자가(베드로와 요한)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11 그러나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이렇게 연결된다. 베드로와 요한의 행위와 대조를 이룬다(Carson, NICNT).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을 내려갔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 그곳에 남아있었다.

“서서 울고 있더니”

“서서” – στημι(서다), 직, 과완, 능

“울고 있더니” – κλαίω(눈물을 흘리다, 울다), 분, 현, 능, 계속해서 울면서 무덤 밖에 서 있었다

“울면서” – κλαίω(눈물을 흘리다, 울다), 직, 미완, 능, 그녀는 계속해서 울면서

슬픔이나 고통 때문에 마음껏 그리고 충분히 울다는 의미(BSL)

억제 되지 않는 울음을 의미한다(ICC, Lns, NICNT, NTC).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는 흐느껴 운 것이 아니라 대성통곡하며 엉엉 울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렇게 울었다는 것은 그녀가 사흘만에 부활하리라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사, 그녀는 무덤 안으로 허리를 구부렸다

그녀는 무덤을 들여다 보려고 허리를 구부렸다(BDAG)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사, 그녀는 예수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아있는 흰 옷 입은 두 천사를 보았다

“앉았더라” – καθέζομαι(앉다, 주저앉다), 분, 현, 디, 앉아있는

“보았다” – θεωρέω(보다, 응시하다, 관찰하다), 직, 현, 능, 역사적(극적) 현재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여자여” – γυνή(여인), 호, 여, 단

호칭의 한 형태로서, 여인에게 정중하게 말할 때 코이네 헬라어에서 사용되었다(Carson, LN, TH).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정중한 뜻으로 어머니께 사용하신 단어이기도 하다.

“어찌하여 우느냐”

이 질문은 울고 있을 시간이 아니라 기뻐할 시간이라는 의미이며(Keener, NTC), 마리아에게 슬픔을 잊고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깨닫도록 촉구하는 의미이다(BECNT).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바로 뒤에 서 계시는데 기뻐해야지 왜 슬퍼하느냐는 약간의 책망의 뉘앙스를 갖는 말이다(옥스포드)

“내 주님을” - τν κύριόν μου

다른 사람(노예나 부하)을 통솔하는 권위를 가진 사람; 권위를 가진 사람은 종종 소유주를 가리킨다(BSL)

어떤 남자를 부르거나 말할 때 쓰는 존경의 칭호(LN)

권위(권세, 권한)의 위치에 있는 사람(BDAG)

예수님이 이미 돌아가셔서 무덤에 묻히셨지만 그녀는 여전히 ‘내 주님’이라고 칭하고 있다.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의 주님이시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것을 전혀 기대하거나 믿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AB, Lns), 예수님의 새로 부활하신 몸의 특성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을 수 도 있다(Carson, IVP, Lns, NICNT, WBC).

마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막 16: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알지” – οδα(알다, 깨닫다), 직, 과완, 능, 전혀 알지 못했다는 의미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가벼운 질책이나 예수님의 그녀의 슬픔을 돌보시는 동정적인 방법일 수 있다(BECNT).

예수님은 그녀의 주의를 자신에게로 끌고 계셨다(WBC).

예수님은 진실로 마리아의 눈이 열리기를 원하셨다(Lns)

“알고” – δοκέω(생각하다, 여기다), 분, 현, 능

“주여” – κύριος(주인, 주님)

영어 성경들은 거의 다 ‘sir’로 번역했다.

어떤 남자를 부르거나 말할 때 쓰는 존경의 칭호(LN)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마리아야 하시거늘”

15절에서 ‘여자여’라고 불렀을 때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마리아야’라고 부르실 때는 알아보고 랍오니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 때에야 영적인 눈이 떠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랍오니(혹은 라부니)” – (나의 주님, 나의 선생님, my lord, my master, my teacher)

중요한 개인적 관계를 암시하는 유대교 성경 교사의 존칭(LN)

랍비를 자신의 선생님으로 일컫는 말(BSL)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나를 붙들지 말라”

“붙들지” – πτω(만지다, 매달리다), 명, 현, 중, 2, 단

사, 나에게 계속해서 매달리지 말라

나에게 매달리지 말라(BDAG)

많은 주석들은 어떤 사람을 붙잡거나 매달리는 것의 의미로 보고 있다. 전혀 만지지 말라는 의미보다는 붙잡고 매달리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자매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한 사실이나, 도마에게 만져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처럼 예수님께 매달렸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으로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또한 이 말씀은 그만 매달리고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사, 왜냐하면 아직 내가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왜냐하면은 예수님께서 지금 아버지께로 올라가는 과정 중에 계셨기 때문에 마리아가 예수님을 붙잡고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나타낸다(IVP, Ridderbos). 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는 일이 완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올라가지” – ναβαίνω(올라가다), 직, 완, 능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사, 그러나 너는 나의 형제들에게 계속해서 가서 그들에게 바로 말해라

“형제들” – δελφός(형제), 명, 남, 복, 대

믿음을 공유한 사람들, 예수님은 자신에게 헌신한 모든 사람들을 형제라 부르신다. 특히 그의 제자들(BDAG)

하나님의 권속에 속한 모든 형제를 가리킴(성별과 상관없이)(BSL)

주님께서 주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당신의 제자들을 형제라 부르신다.

“가서” – πορεύω(가다), 명, 현, 디, 너는 계속해서 가라

“이르되” – επ ατοῖς(그들에게 바로 말하라), 명, 과, 중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

예수님의 아버지가 곧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예수님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이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하나님과의 똑 같은 관계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AB, Carson, IVP, NICNT, TH)

“올라간다” – νέρχομαι(올라가다), 직, 현, 능, 1, 단, 내가 올라가고 있다.

현재를 사용한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과정 중에 있었지만 아직 거기에 도착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TH)

부활 후에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것처럼 믿음을 공유한 형제들도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하나님의 나라로 올라갈 것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미리 말씀하신 것처럼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서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오실 때까지 제자들이 해야 할 사명을 말씀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막 16: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사, 그녀는 가서 그들이 계속해서 슬퍼하고 울고 있을 때 그(예수님)와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전했다.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한다. 제자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함께하는 것이다.

막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제자는 선생님과 함께 함으로 보고 배우고 듣고 배운다. 그리고 그 제자는 보냄을 받는다. 파송은 제자의 마지막 사명이다.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슬퍼하며, 울고 있는’ 두 단어 모두 분, 현, 능, , 복, 여, 계속해서 슬퍼하고 울고 있을 때

‘함께 하던 사람들’도 남성 복수이기 때문에 마리아는 틀림없이 남자 사도들을 찾아 갔다.

제자들은 부인하고, 도망쳤던 죄책감에 빠져 슬퍼하며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부활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다.

요 20: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사, 막달라 마리아가 내가 주님을 보았고, 그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갔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메시지를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갔을 것이다.

“내가 주를 보았다”

마리아는 부활의 증인으로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도 분명하다. 곧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그것이 온 인류가 들어야 할 복음이다. 이 복음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생명 얻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보았고” – ράω(보다), 직, 완, 능

눈으로 지각하는 것(BDAG)

“이르니라(전하려고)” – γγέλλω(알리다, 전하다), 분, 현, 능, 목적 분사, 이 단어는 신약성경 중에서 여기서만 사용되었다. 곧 부활의 메시지를 전할 때 사용되었다.

여기서 ‘가서(갔다)’는 역사적 현재를 사용하고 있다.

막 16: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부활 신앙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가가 제자들의 불신을 이처럼 거듭 기록한 이유는 초대 교회 내에서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던 성도들을 염두에 두고 변증하기 위함이다(옥스포드).

  1. 몇몇 자매들에게

마 28:9,10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무덤에서 천사들을 만나서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부활의 메시지를 가지고 달려가다가 주님을 만났다.

“그들을” – ατός(그), 인대, 3, , 복, 여, 그녀들에게

“평안하냐” – χαίρω(기뻐하다, 즐거워하다), 명, 현, 능, 2, 복, 너희는 기뻐하라

명령형에서 이 단어는 안녕을 기원하는 형식적인 인사(BDAG)

건강과 행복의 소망을 담은 인사(BSL)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성경에서는 Greetings! 혹은 hail로 번역했고, CJB 성경에서는 Shalom!이라고 번역했다. 따라서 ‘평안하냐’는 유대인식의 인사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경배하니” – (경배하다, 절하다, 예배하다), 직, 과, 능, 3, 복

높은 권위의 인물에게 자신의 완전한 의존이나 복종을 태도나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특히 부활하신 주님은 경배의 대상이다(BDAG)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이르시되” – λέγω(말하다), 직, 현, 능, 역사적 현재

“무서워하지 말라” – (무서워하다, 두려워하다), 명, 현, 중, 2, 복, 너희는 계속해서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 πάγω(가다), 명, 현, 능, 2, 복, 너희는 계속해서 가라

“내 형제들”

제자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나타낸다. 그들은 자신을 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복의 관계로 돌아온 그들을 환영하고(BECNT, Lns, NICNT), 그들을 용서하셨음을 보여주신다(ICC).

“하라” – παγγέλλω(보고하다, 선포하다, 전하다), 명, 과, 능, 2, 복, 너희는 바로 전하라

“보리라” – ράω (보다), 직, 미, 중, 3, 복, 그들이 스스로 볼 것이다

주님은 자매들에게 전해들은 말이 아닌 그들의 눈으로 스스로 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도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는 우리 눈으로 스스로 뵙게 될 것이다.

고전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주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앞으로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사명을 말씀하려고 하신 것이다.

  1.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

마 28:11-15

11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경비병 중 몇”

이들이 제일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사람들이다. 이제 이들이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모든 된 일들을 보고했다.

“모든 된 일”

천사들과 빈 무덤을 보고, 무덤 입구의 돌이 굴려지고, 지진이 난 일들 그리고 어쩌면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알리니” – παγγέλλω(보고하다), 직, 과, 능, 3, 복, 그들이 보고했다.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많이” – κανός(충분한, 상당한)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우리가 잘 때에”

‘잘 때에’ 발생했다면, 누가했는지, 도둑질인지 어떻게 안다는 소리인가?

경비병들이 경비서는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많은 돈을 줄 것이 아니라 벌을 받아야 마땅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충분한 만큼의 뇌물을 받았다.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꾸짖으셨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권하여” – πείθω(설득하다, 회유하다, 달래다, 안심시키다), 직, 미, 능, 1, 복, 우리가 설득하겠다.

15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우리는 여기서 정치, 종교 권력자들의 부패하고 거짓된 모습을 본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이다. 또한 백성들이 무지몽매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이들의 거짓말이 사실이었다면 어떻게 초대교회 때 베드로의 설교 한 번으로 삼천 명, 오천 명씩이나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겠는가? 당시 백성들 가운데 이들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알려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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