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주일예배 from 광주중앙침례교회 on Vimeo.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
요 17:1-5
서론: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기도장으로,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뭘 기도하셨을까?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사,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시고 자기의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말씀하셨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이 당신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도록, 당신이 당신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사,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시고
“이것들 말씀하시고”
다락방을 떠나 겟세마네로 가시는 길에서 하신 말씀이니까 15~16장까지의 말씀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런 다음에)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다. 이것은 관용구로써 기도의 상징적인 동작으로 이해할 수 있다(NAC).
요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이제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가 시작된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여”
예수님은 아버지여로 기도를 시작하신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사, 당신이 당신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영화롭게 하사” – δοξάζομαι(영화롭게 하다, 영광스럽게 하다, 영광 돌리다, 찬양하다), 명, 과, 능, 곧 바로 영광스럽게 해달라는 의미이다.
눈부신 위대함을 갖게 한다는 의미로 빛나는 옷을 입히다, 영광스럽게 하다(BDAG)로 해석할 수 있다. 요한복음에서 매우 좋아하는 용어로 예수님의 전 생애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BDAG). 그리고 이 단어는 그리스도 사역의 절정을 나타낼 때 반복 사용되었다(호크마종합주석).
문자적으로, 예수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달라는 기도가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이 기도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 바로 앞의 말씀에서 그 암시를 얻을 수 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때” - ὥρα(시간, 때)
어떤 사건을 위한 때로서 특정한 시점(BDAG, BSL) 곧 십자가를 지셔야 할 때를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셨다. 십자가는 아픔이요 괴로움이요 저주인데 어떻게 영광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영광으로 여기셨다.
요 13: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그러면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목적은 무엇일까?)
-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1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사, 아들이 당신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도록
‘ἵνα + 가정법’을 사용함으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목적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은 전 생애의 초점을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데 맞추고 사셨다. 십자가를 생각하며 괴로우실 때도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셨다.
요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셨을까?)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사, 당신이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완성하여 나 자신이 당신을 땅 위에서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사, 당신이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완성하여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주신” – δίδωμι(주다, 선사하다, 바치다), 직, 완, 능, 이미 주셔서 지금도 가지고 있다는 의미
“일” – ἔργον(일, 행위)
여기서 일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의무(BSL)로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의 핵심은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다.
“내가 이루어” – τελειόω(완성하다, 마치다, 완수하다, 성취하다), 분, 과, 능, 완벽하게 완수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활동을 완성하여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BDAG, LN) 곧 구속사역을 완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형을 사용함으로 미래에 있을 일의 명확성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당신이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완성하여’란 말씀은 시간적인 성취의 의미보다 실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호크마종합주석).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것처럼, 아버지께서 우리에게도 주신 일이 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9)’, ‘내 양을 먹이라(요 15:17)’. 우리도 아버지께서 주신 이 일을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완수함으로)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사, 나 자신이 당신을 땅 위에서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내가’란 말이 생략 되었는데, 여기서는 ‘내가’가 강조되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내가를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 ἐπὶ τῆς γῆς(땅 위에서)
지구상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BDAG). 따라서 ‘사람들 중에서’로 해석할 수 있다(BDAG).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첫 번째는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할 수 있도록’ 이었다. 그럼 두 번째 목적은 무엇일까?)
-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 위하여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사, 당신이 그에게 모든 육체의 권세를 주신 것처럼, 당신이 그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영생을 주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절과 2절은 콤마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십자가의 영광을 구하신 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함이고, 또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다. 이 일을 위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육체의 권세를 주셨다.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사, 당신이 그에게 모든 육체의 권세를 주신 것처럼
“육체” – σάρξ(몸, 육체)
육신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BDAG). 따라서 ‘모든 육체’는 모든 사람으로 번역할 수 있다(BDAG).
(그러므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
사, 모든 육체의 권세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 혹은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권세로 이해할 수 있겠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모든 육체의 권세’에서 ‘권세’는)
“권세” – ἐξουσία(권한, 권리, 권세)
통제 또는 지휘권(BDAG)을 의미한다.
(아들에게 모든 육체의 권세를 주신 것처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사, 당신이 그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영생을 주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도 1절에서와 같이 ‘ἵνα + 가정법’을 사용함으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두 번째 목적을 나타내고 있다.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사도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들” – πᾶς(모든), 형, 중, 단, 중성을 사용함으로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사, 그가 영생을 주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영생을” – ζωὴν αἰώνιον
‘영생’은 끝이 없는 초월적인 생명(BDAG)을 의미한다.
영생의 개념 속에는 생명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시간적 측면과 더불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지복(더 없는 행복)의 삶이라는 질적 측면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영생이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가리킨다(옥스포드 원어성경대전).
태생과 이생에서는 생명이 시간적 제약을 받지만 사후에는 시간적 제약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영원하든지 지옥에서 영원하다. 그것의 선택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의 참고 구절)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6:39,40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러면 무엇이 영생인가?)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사, 그리고 영생은 그들이 당신 곧 유일하신 진짜 하나님과 당신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이것입니다.
(원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영생은 이것입니다”
(여기서 ‘이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아는 것(영생은 그들이 아는 이것입니다)” – γινώσκω(알다, 깨닫다), 가, 현, 능, 계속해서 알고 있는 것, ‘ἵνα + 가정법’으로 동격절 인도의 용법으로 쓰였다.
여기서 이 단어는 직접적인 개인적 경험을 통하여 어떤 사람을 아는 것으로, 관계의 지속성을 나타낸다(LN).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개인적이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과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다(TNTC).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적인 지식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와 교제하며 사는 것을 수반해야 한다(ESVSB).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러면)
‘영생은 그들이 아는 이것입니다’에서 ‘그들’은 누구인가?
2절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면 영생은 누구를 아는 것인가?)
“당신을”
아버지를
(그러면 여기서 당신 곧 아버지는 누구신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사, 유일하신 진짜 하나님
하나님의 유일성을 나타낸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범신론적인 신이 아니라 유일하신 진짜 하나님을 말씀하신다.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고전 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영생은 그리고 또 누구를 아는 것인가?)
“당신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유일하신 그리스도 곧 메시아이시다.
(그러므로)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보내신” – ἀποστέλλω(보내다, 파송하다), 직, 과, 능
이 단어는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을 특파하는 것을 의미한다(BDAG).
“예수 그리스도”
“예수” – Ἰησοῦς
Ἰησοῦς는 히브리 이름 여호수아의 헬라어 번역으로 예수님의 이름이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리스도” – Χριστός
Χριστός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헬라어 번역으로 예수님의 직분을 의미한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의미로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의미한다(DBL).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삼중직을 갖으셨다.
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어린양의 희생제물로 십자가에 드리셨고, 선지자로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전하셨으며, 왕으로서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통치하실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과 영생이시기 때문이다.
요1서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예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하여 개인적인 경험으로 알고 있는지 스스로 자신에게 묻고 답해야 한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세 번째 목적은 무엇일까?)
-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위하여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사, 그리고 아버지여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당신과 함께 가졌던 영광으로 지금 당신 자신과 함께 당신 자신이 나를 영광스럽게 하소서
“창세 전에”
사, 세상(우주)이 있기 전에(πρὸ τοῦ τὸν κόσμον εἶναι)
“세상” – κόσμος(질서, 장식, 꾸밈, 세상, 우주)
이 단어에서 세상(우주)이란 하나님께서 질서대로 장식해 놓은 곳이라고 읽혀진다.
그래서 이 단어는 질서 있는 구조로서 꾸미거나 아름답게 하는 대상(LN)을 의미한다.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사, 내가 당신과 함께 가졌던 영광으로
예수님께서 성육신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 곧 아버지 품 속에 계셨던 독생하신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을 의미한다.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런데)
“가졌던” – ἔχω(가지다, 있다), 직, 미완, 능, 계속적 의미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라고 과거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끝나버린 과거의 영광인 것처럼 이해되지만, 미완료를 사용함으로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사, 지금 당신 자신과 함께 당신 자신이 나를 영광스럽게 하소서
주님은 다시 십자가를 통해서 아버지와 가졌던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기를 원하신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을 통하여 아버지와의 영광의 교제의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고난 앞에 용기를 잃지 말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