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
광주중앙침례교회 2019.8.18 from housechurch on Vimeo.
눅 18:9-1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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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의 기도
자기를 높이는 기도(14), 즉 교만한 기도
잠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악을 미워한다는 것은 그것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고 그것과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는 것이다(The Net Bible Notes)”
여기서 악은 “교만과 거만만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말한다.
여기서 “나”는 지혜를 가리키며,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잠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기도(9)
“의로운” – 형, 남, 복, 주, “높은 수준의 정직성을 갖추고 있는(BDAG)”,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에 따르고 있는(Louw-Nida)”
“믿고” – 분, 완, 능
“멸시하는” – 업신여기다, 무시하다, 분, 현, 능
롬 10:3,4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10)”
“기도하러” – 부, 과, 디, 성전에 올라간 목적을 나타낸다.
막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11)”
바리새인들은 사거리 길에 서서 손을 들고 소리를 높여 기도했는데 이는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서서” – 분, 과, 수,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기도의 동기가 순수하지 못함을 나타내 보인다.
“따로” – 직, “자신을 향하여”, 문맥으로 볼 때 스스로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도하여” – 직,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직, 미완, 디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1)”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양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찬양은 결국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The Net Bible Notes)”
“토색” – 강탈하는, 게걸스럽게 먹는, 형, 남, 복, 주, 여기서는 “강도들”이라는 명사적 용법으로 사용됨
“불의” – 부정한, 불의한, 불법의, 형, 남, 복, 주, 여기서는 “불의한 자들”이라는 명사적 용법으로 사용됨, “옳은 것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BDAG)”, “도덕이나 정의의 허용된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BSL)”
“간음을 하는 자들” – “배우자에게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BDAG)”
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12)”
사 58: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조항은 지키려고 했지만 율법의 정신(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버렸다.
사 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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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의 기도
자기를 낮추는 기도(14), 즉 겸손한 기도
“세리는 멀리 서서(13)”
“그러나(데)” – 개역개정판에서는 생략됨
“서서” – 분, 완, 능, 11절의 “서서(분, 과, 수)”와 비교 됨, 세리는 한참동안 계속해서 감히 기도하지도 못하고 서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능동태를 사용함으로 스스로 자신의 죄를 통회하는 모습이다.
스 9: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13)”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13)”
통회하는 기도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3)”
바리새인들처럼 교만한 기도도 문제이지만, 그러나 같은 죄를 계속 기도할 때마다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문제이다.
요일 1:8-10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14)”
“의롭다 하심을 받고” – 분, 완, 수, 나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다면 나의 행위에 따라 의로움이 바뀜으로 완전하지 못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자들은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에 있는 완전한 의로움을 받는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