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중앙침례교회 2019.1.27 from housechurch on Vimeo.
믿지 못하는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
요 10:22-42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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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못하는 사람들
본문에는 마음에 심한 갈등을 하면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왜 믿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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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인간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30)”
“단순히 의합(意合)되어 하나라는 말씀이 아니라 능력과 본성에 있어서 하나다(벵겔주석)”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 철학에서 ‘토 헨(the one)’은 존재의 궁극적인 통일성, 영원성, 불변하고 파생되지 않는 단일한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써 구별이 없는 존재의 동일성을 나타낸다(옥스포드 원어성경대전)”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직,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존재하시는 그는”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31)” – ‘다시’라는 단어를 보면 처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32)”
직, “내가 아버지로부터 많은 선한 일들을 너희에게 보여주었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32)”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다(33)”
직, “네가 사람이면서 네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34)”
직,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다고 너희의 율법에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기록되어” – 분, 완, 디
시 82: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여기서 신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제판장들을 의미한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35)”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36)”
“거룩하게 하사”와 “보내신”은 둘 다 직, 과, 능
“거룩하게 하사” – 죄에서 거룩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사명을 위한 거룩함이다.
“보내신” – ‘아포스텔로’로 특별한 사명을 주어 보내셨음을 나타낸다.
요일 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증거를 충분히 보여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죽이려 했다. 오늘 날도 다를 바 없다. 많은 사람들이 4대 성인 중의 한 분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37)”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38)”
“깨달아 알리라” – ‘히나 + 가정법’, 과거 가정법과 현재 가정법을 사용함, 직, “너희가 알고 계속해서 알기 위하여”, 그러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들은 믿으라는 말씀이다.
고후 4:3,4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39)” – 직, 미완, 능
그들은 예수님을 돌로 치려다가 포기하고 이제는 체포하려고 하고 있다.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39)”
그들이 예수님을 잡지 못한 이유는;
첫째, 주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둘째, 예수님을 따르는 백성들이 두려웠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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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양들 중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전절(22)” – 봉헌절, 현재적 의미로는 헌당식
앞의 7장부터 10:21까지는 초막절 전후에 일어난 일이고, 22절부터 39절까지는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B.C. 175-164)가 유대교를 없애고 팔레스틴을 헬라화하려 할 때 마카비 형제들이 일어나 유대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영웅적 투쟁을 벌여 B.C. 164년 적군을 몰아내고 우상 숭배로 더러워진 성전을 청결케 하여 재봉헌함을 기념하는 절기(디럭스바이블 인터내셔널)”
“행각(23)” – 주랑, 현관, “성전의 동쪽 부분에 솔로몬이 세운 기둥으로 받쳐진 지붕이 있는 현관(디럭스바이블 인터내셔널)”
“거니시니(23)” – 직, 미완, 능
“마음을(24)” – “여러가지 다양한 측면에서 인생의 중심과 자리로서의 soul(혼, 마음, 정신), 여기서는 느낌과 감정에 있어서의 마음(BDAG)”
“의혹하게(24)” – 들어올리다, 빼앗아가다, 졸이다, 의심하다, 조이게(공동번역), 졸이게(새번역), 의심하게(킹흠역, 바른 성경), 궁금하게(현대인의 성경), 헷갈리게(우리말성경), 영어 번역 성경들은 doubt(의심)와 suspense(긴장감)로 번역함
“밝히 말씀하소서(24)” – 명, 과, 능, 믿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죽일 근거를 찾고자 함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25)”
“믿지 아니하는도다”는 직, 현, 능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25)”
직,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이 일들이 나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거늘”
“이 일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는 일들임을 나타낸다.
“나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 많은 표적들이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요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왕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내 양이 아니므로(26)”
직, “나의 양들 중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있지(에이미)’가 ‘~에 속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나의 양들 중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불신앙을 멈추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기 위한 37-38절의 호소를 주목하라. 선택과 계시에 대한 책임 있는 듣기 두 측면이 유지된다(W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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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사람들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사람들의 손을 피하여 침례 요한이 침례 베풀던 요단 강으로 가서 거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40-42)
“거하시니(40)” – 직, 과, 능, “아마 A.D. 29년 수전절부터 A.D. 30년 마지막 여정까지 약 3개월 반(복음서 대조서, A. T. Robertson)
“참이라(41)” – 직, 미완, 능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42)”
직, 과,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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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와 양의 관계
“내 양은” – 직, “그 양들 곧 나의 것들”, 그냥 ‘나의 양들’이라고 해도 되는데 소유 형용 대명사를 사용한 것은 예수님의 소유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7절에는 세개의 동사가 사용되었는데(들으며, 알며, 따르느니라) 모두 직, 현, 능을 사용했다.
“들으며” – 듣는다는 것은 순종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알며” – 직, “그리고 내가 내가 안다”, ‘알며’ 앞에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함으로 예수님 자신을 강조하고 있다. “기노스코는 관찰과 경험을 통해서 아는 것을 뜻하므로 자신의 양인 성도들을 큰 관심으로 항상 세밀하게 관찰하는 목자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옥스포드 원어성경대전)”
“따르느니라” – 연합을 타나내는 불변사 ‘아’와 ‘켈류도스(길)’의 합성어, 함께 같은 길에 있다, 동행하다, 따르다, 제자가 되다.
그러므로 이 세 단어는 주님과 양인 성도들과의 관계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인생의 광야에서 선한 목자가 없이 산다는 것은 맹수에게 잡혀 먹힐 수밖에 없다.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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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의 약속
첫째, 영생을 주심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28)”
직, “그리고 내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주노니’ 앞에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함으로 영생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 이심을 강조한다.
“주노니”는 직, 현, 능, 영생은 미래에 주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주시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요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일 5:11-13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둘째, 영원한 보호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28)”
직, “그래서 그들은 결코 영원히 멸망치 않을 것이다”
미래의 강한 부정을 나타내기 위해 ‘우 + 미래 직설법을 사용하지 않고 ‘우 메 + 가정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여기에 또 ‘영원히’을 추가함으로 더욱 강조하고 있다.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28)”
직,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지 못하리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