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중앙침례교회 2017.11.26 from housechurch on Vimeo.
변형되신 예수님과 제자들
마 17:1-8; 막 9:2-8; 눅 9:28-36
서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심(마 17:1)
“그리고” – 1절 앞에 “카이(그리고)”라는 접속사가 나온다. 이것은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제1차 수난 예고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수난 예고로 혼란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신적 영광의 분명한 현현을 보여주심으로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 직분에 대한 확증과 용기를 심어 주시기 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옥스포드 원어성경대전)”
“엿새 후에” –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고 지난 시간을 의미한다. 마태와 마가는 “엿새 후”라고 썼고 누가는 “팔 일쯤 되어”라고 했다. 그것은 “마태와 마가는 사건 당일 날들을 제외한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변화산까지의 여행 기간만을 기록한 반면 누가는 사건이 일어났던 두 날 모두를 포함시켰기 때문으로 추정된다(옥스포드 원어성경대전)”
“베드로, 야고보, 요한” – “제자들 중에서 중심이 되는 제자들(ESVSB)”
“따로” – “카트(~중에) 이디안(자기 자신의, 자기 소유의, 자신에게 속한)”, 자기 소유 중에서, 자기에게 속한 자 중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특별히 이 세 제자를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막 5:37)와 겟세마네 동산(마 26:37)에도 데려 가셨다.
“높은 산” – 어느 산인지 밝히고 있지 않음
(무얼 하시려고 높은 산에 올라 가셨을까?)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눅 9:28)”
“기도하시러” – 부, 과, 디, 결단의 기도
(무슨 기도를 하시려고 높은 산에 올라 가셨을까?)
갈릴리 사역을 종결하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위해 무언가 결단의 기도가 필요하셨을 것이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가시기 위해 기도하시려고 높은 산에 올라오셨다.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형되심(마 17:2)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눅 9:29)” – 직, “기도하실 때에 그의 다른 얼굴의 형태가 되었다”
(어떤 모습으로 변형 되셨는가?)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2)”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막 9:2)”
“옷이” – “옷들이”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마 17:2; 막 9:2)” – “변형되사”, 직, 과, 수, 원래 이 단어의 의미는 “변형시키다”인데 수동태를 사용함으로 “변형되셨다”의 의미가 되었다. “이 동사는 이 영광이 언제나 예수님 안에 존재했음을 암시하고 있다(벵겔주석)”
(그러면 왜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셨는가?)
1차 수난 예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제자들이 혼란스러워 하므로 그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신성의 모습을 보여주시므로 믿도록 하고, 용기를 주시기 위함으로 추정된다.
“먼저 제1로, 변모는 예수의 부활, 즉 몸의 영광적 변화의 전표이다. 그리고 또 우리들 모든 신자에게 미칠 최후의 구원의 실례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변모의 예수처럼 영광화 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모를 믿을 때, 부활을 믿는 일은 일층 용이하게 되는 것이다(내촌감삼)”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심(마 17:3)
“그 때에” – 직, “그리고 보라”, 극적인 장면을 전환시키므로 집중시키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모세와 엘리야” – 율법과 예언자의 대표,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시려고 오셨고,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려고 오셨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또한 엘리야는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해 올 자로 예언 되었다(말 4:5-6; 마 3:1-3; 11:7-10)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 분, 현, 능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눅 9:31)” – 직, “장차 예루살렘에서 성취될 그의 죽음(떠남, 엑소도스)을(대하여)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황홀경을 경험함(마 17:3b-7)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눅 9:32)”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위해 기도하고 계실 때 제자들은 깊이 졸고 있었다. 그리고 영광 중에 빛나는 광채와 이야기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깨어나서 이 황홀경을 경험했다.
“그들에게 보이거늘” – 직, 과, 수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중대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후에 베드로는 이 경험을 벧후 1:16-18에서 언급하고 있다(웨슬리안 주석)”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4)” – 황홀경을 경험한 제자들은 세상으로 내려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시 내려오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막 9:6)”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눅 9:33)”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5)”
“그의 말을 들으라” – 명, 현, 능. 이제 더 이상은 나의 생각과 경험으로 주님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해야 한다.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6)”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7)”
오직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음(마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다 떠나가고 그들 곁에 남아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