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중앙침례교회 2015년 6월 21일 주일예배 from housechurch on Vimeo.
말씀이신 예수님
요 1:1-5
서론:
태초에 계셨다(1)
“태초에(엔 아르케)” – 창 1:1의 “베레쉬트”와 비교
“계시니라(엔)” – ‘에이미(이다, 있다)’의 미완료. 선재성, 영원성, be와 become의 비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1,2)
“함께(프로스)” – ‘함께’을 나타내는 다른 전치사들은 정적인 공존을 의미한다면 ‘프로스’는 동적인 공존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간적인 공존보다 친밀하고 영속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계셨다(엔)” – ‘에이미(이다. 있다)’의 미완료, 삼위일체의 근간을 찾을 수 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2)” – 1절의 내용을 다시 반복함으로 강조하고 있다(반복적인 용법)
하나님이시다(1)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카이 데오스 엔 호 로고스)” – 주어와 술어의 위치를 바꿔 쓰고 주어를 나타내기 위해 관사를 붙였다. 그러므로 이 문장에서 주어는 “말씀”이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관사가 붙지 않았어도 일반적인 “신”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만물을 창조하셨다(3)
“만물(판타)” – ‘파스(모든)’의 중, 복, 주. 관사가 없으므로 현시점의 만물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만물을 의미한다.
“그로 말미암아(디 아우투)” – ‘디아(통하여, 때문에, ~에 의하여)’
“지은바 되었으니(에게네토)” – ‘기노마이(되다, become)’. ‘에이미’와 비교
“지은 것이(호 게고넨)” – 직, 완, 능
생명의 빛이시다(4,5)
“생명(조에)”
“있었으니(엔)” – ‘에이미(이다, 있다)’의 미완료
“빛이라(엔 토 포스)” – 근원적인 빛
여기서의 생명의 빛은 ‘엔’을 사용함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선재하는 영원한 빛이다.
“비치되(파이네이)(5)” – ‘파이노(비치다, 빛나다)’의 직, 현, 능
“깨닫지(카텔라벤)” – ‘카타람바노(붙잡다, 이해하다, 깨닫다)’의 직, 과, 능